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칼럼]왼손 팔씨름의 역사

많은 팔씨름 호사가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주제. 바로 ‘누가 팔씨름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가?’는 이 분야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이상 끊임없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뜨거운 감자로서, 우리는 프로 토너먼트가 출범한 이후의 기나긴 역사를 전반적으로 꿰뚫어야 이 민감한 사안에 관해 토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왼손과 오른손 경기가 따로 있다는 것과 선수들이 가지는 상징성(물론 상징성을 포함한다면 압도적으로 존 블젱크가 정점에 서있을 것이다) 등 고려해야할 사안이 수없이 많지만, 가장 객관적인 자료. 바로 프로 토너먼트의 우승 횟수를 참고한다면 각자의 생각에 좀더 많은 정보와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쓸 내용은 바로 1977년 출범한 최초의 ‘왼손’ 프로 토너먼트인 NAWA(National Arm Wrestling Association) 대회를 비롯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다른 대회들의 수상자들에 관해서다. 캘리포니아의 롱 비치에서 시작된 이 대회는 37년간 종주의 명맥을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수많은 전설들이 이 대회들을 밟았기에, 나름대로의 신빙성을 가진 객관적인 자료라 할 수 있겠다.




초대 챔피언 존 울시

1977년 9월, 존 울시가 왼손 최초의 NAWA 통합 체급(Open Weight)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전설이 되어버린 클리브 딘

1979년 9월, 2년간 제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존 울시는 WWC(World Wristwrestling Championship)에서 또다른 전설 클리브 딘을 만나 패하게 된다. 클리브 딘은 향후 6년간 IWC(International Wristwrestling Championship), WPWA(World Professional Wristwrestling Assosiation)등의 대회에서도 타 선수들을 모조리 깨부수는 위엄을 보여준다.




그립보드에서만큼은 격투기 선수가 아닌 팔씨름 레전드. 게리 굿리지.

1986년 10월, 1985년 왼손 프로 토너먼트 대회가 없었던지라 12개월동안 음지(?)에서 ‘타도 클리브 딘’을 외치던 선수들이 날카롭게 칼을 갈아 토너먼트의 문을 두드렸으며, 그중 클리브 딘은 슈퍼 캐네디언인 게리 굿리지에게 결국 왕좌를 물려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대회가 역사상 가장 치열했다고 말하는데, 그들을 상대로 통합 체급을 정리한 게리 굿리지는 명실상부한 80년대 중반 최고의 왼손 팔씨름 선수로서 우뚝 서게 된다.

1988년 2월, 지난 대회가 열린지 2년도 체 되지 않아 게리 굿리지는 자신의 사촌인 거빈 루이스에게 패하고 만다. 이후 거빈 루이스는 2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키게 된다. 이쪽 집안은 확실히 유전자가 좀 특별한 것 같다.

1990년 10월, CSUNC(Canadian Stand-Up National Championship) 대회에서 게리 굿리지가 또다시 자신의 사촌인 거빈 루이스를 꺾고 왕좌에 다시 오른다. 친족등용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회이다.

1992년 7월, 또 다른 슈퍼 캐나다인 스티브 모르네우가 Gloucester Fair International Armwrestling Championship 대회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패왕의 철옹성을 구축한 게리+거빈 사촌형제들을 모조리 꺾고 새로운 넘버원에 등극한다.




왼쪽이 게리 굿리지, 오른쪽이 거빈 루이스이다.

1993년 7월, 사촌지간에 조금 더 잘났던 게리 굿리지가 1년만에 타이틀을 되찾는다. 이로서 게리 굿리지는 3번이나 1위를 차지한 남자로 이름을 올리며, WAF(World Armwrestling Federation)에게 최초로 왼손 1위의 타이틀을 받게 된다.

1994년 7월, 스티브 모르네우가 1년만에 타이틀을 뺏는다. 이로서 스티브 모르네우는 게리 굿리지, 거빈 루이스과 80년대 후반, 90년대 중반까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삼국지 라인을 구축하게 된다.

1995년 7월, 거빈 루이스가 게리와 스티브를 모조리 꺾고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리고 1996년에 열린 같은 대회에서도 두 사람을 모두 상대하여(참고로 리그가 아닌 토너먼트다) 꺾으며 2년간 왕좌의 자리를 지킨다.

1997년 7월, 거빈 루이스와 게리 굿리지, 스티브 모르네우가 팔씨름 활동을 그만 두며 랭킹은 고스란히 4위었던 에릭 웰펠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에릭 웰펠은 다수의 1위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던 남자로서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알란 카라에브와 클리브 딘

1997년 12월, 북아메리카의 독주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 울리는데, 바로 러시아산 괴물 알란 카라에브의 등장이 있었다. 그는 에릭 웰펠을 꺾고 WAF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서 최초로 비-북아메리카인 왼손 넘버원의 명예를 거머쥔다.

1998년 11월, 바흐탕 자바카제(Vakhtang Javakhadze)가 알란 카라에브를 꺾고 1위에 오른다.

1999년 7월, 바흐탕은 EAC(Europian Armwrestling Championship)에서 에레클 굴치아니라는 같은 조지아인에게 패하여 왕좌를 물려주게 된다.

2000년 7월, 12개월동안 활동이 없던지라, 에레클은 알란 카라에브에게 왕좌를 물려주게 된다.

2000년 10월, 랭크 변동이 있었던지 3개월 후, 역시 12개월간의 공백을 가졌던 알란은 캐나다인 렌 휴튼에게 왕좌를 넘겨준다. 렌 휴튼은 이전에 얼 윌슨과 마이크 굴드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꺾었던 적이 있던지라,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9월, 렌 역시 이전의 1위들과 마찬가지로 12개월간의 대회 활동이 없었기에 댄 빅터에게 왕좌를 물려주게 된다. 댄 빅터는 2001년 4월에 열린 WAF에서 얼 윌슨, 트레비스 베이전트, 크리스찬 비니, 존 블젱크, 마르시오 바르보자 등의 괴물들을 꺾어 여태 왕좌를 물려받게 된 인물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있다.

2002년 4월, 댄은 결국 12월간의 대회활동 전무로 인해(어디서 본 것 같다) 알란 카라에브에게 왕좌를 물려주게 된다. 알란은 돌아온 황제 클리브 딘을 2001년 WAF 대회에서 꺾어 그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2002년 10월, 다들 예상하셨다 시피 알란은 12월간의 대회활동 전무로 인해(데자뷰라 생각되는건 기분탓이겠지) 크리스찬 비니에게 1위의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유망주에서 왕좌까지. 트레비스 베이전트


2002년 12월, 드디어 새로운 혼돈이 찾아왔다. 트레비스 베이전트가 초특급 유망주에서 자리를 박차고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선 것이다. 트레비스는 크리스찬 비니를 All-Niagara Armwrestling Championship 대회에서 꺾는다.

2003년 1월, 이를 갈고있던 비니는 2개월만에 Reno Reunion Armwrestling Championship에서 왕좌의 탈환을 성공한다.

2003년 5월, 트레비스 베이전트가 4개월만에 AAA 대회에서 비니를 꺾어버린다.

2005년 3월, 2년간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던 트레비스는 Mike Gould Classic대회에서 데본 라렛, 실베인 페론에게 패배하고, 결국 대회의 최종 우승은 얼 윌슨에게 돌아갔다.

2006년 3월, 1년만에 트레비스 베이전트가 돌아왔다. 트레비스 베이전트는 이로서 게리 굿리지와 더불어 왼손 3회 1위를 차지한 남자가 된다. 이후 트레비스는 4년이 넘도록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철옹성을 구축한다.




데본 라렛의 무지막지한 팔길이.

2010년 12월, 혜성처럼 나타난 데본 라렛이 Arm Wars 대회에서 트레비스를 꺾어버린다. 이 대회에서 데본 라렛은 오른손 대회까지 우승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2011년 2월, 트레비스 베이전트가 UAL에서 데본을 상대로 복수에 성공하며 4회나 1위를 차지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2011년 10월, 안드레이 푸쉬카가 등장하였다. 푸쉬카는 트레비스를 꺾고 Nemiroff World Cup Open 카테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위를 수성한다.

2012년 7월, 데본 라렛이 PAL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 푸쉬카를 5-1로 꺾으며 다시 한번 1위를 수성하였다. 이후 데본은 끝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지만, 현 시대의 또 다른 최강자들과 경기를 많이 치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해외 칼럼 번역] 심판에 대한 처우, 이대로 괜찮은가?

*본 글은 https://armwrestlersonly.blogspot.com에서 발췌하여 번역한 글입니다.





   최근 꽤나 어이 없는 사건이 팔씨름계에 이슈의 불을 붙혔다. 바로 폴란드 팔씨름 대회에서, 한 선수가 심판의 판정에 승복하지 못하고 심판을 구타한 사건이다. 충격과 공포의 순간을 목도한 운영진들은 즉각 선수를 실격 처리했지만, 그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선수는 그 자리에서 심판에게 계속 달려들었으며, 퇴근길의 심판을 구타할 심산으로 입구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기 까지 하였다.



   WAF의 대표 심판인 레너드 하클레스는 본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협회는 규율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며, 이는 선수들에게도 통용되는 기본적인 사안입니다. 이번 일은 제가 여태 듣도보도 못한 저열한 사태이며, 묵과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시간 문제이긴 하였지만, 결국 그 선수는 폴란드 팔씨름 계의 즉각적인 조치로 인해 1년간 경기 출전 불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2018년 10월 7일부터 적용). 이로써 폴란드 팔씨름 계는 적절한 본보기를 보여줬고, 다른 선수들에게 꽤나 무거운 메세지를 전달했다. 팔씨름이 남성적인 스포츠인만큼, 그만큼 조심하고 지양해야 할 문화 역시 바로 훌리건 문화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사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잘 알 것이다. 심판은 팔씨름의 역사 속에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무수히 많은 위협을 받아 왔다.



   불과 몇 년 전 있었던 A1 Russian Open 때, 한 심판은 스트랩 상태로 몸싸움을 하던 선수 둘 사이에서 제지를 하다 구타를 당했다. 아무리 두 선수가 스트랩 상황이었기에, 중간에 낀 심판이 그만큼 더욱 높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공정한 규정에 의거한 판정 집행을 하는 심판에게 있어선 안 될 결과였다.



   몇 년 전에 있었던 EUROARM 2010년 모스크바 대회에서도, 폴란드 심판(폴란드 팔씨름 계에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바이다)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선수에게 폐회식 순간에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과거에도 이러한 일들은 꽤나 비일비재했다. 1976년에 있었던, 메이저 팔씨름 대회의 기틀을 마련한 조상 격인 WWC(World Wristwrestling Championship) 중의 정점이었던 페탈루마 대회에서도, 한 선수가 심판에게 돌진하여 경찰관 3명이 투입된 끝에 진압되는 사태가 있었다.



   욕설 만큼은 우리가 대회 중에도 꽤나 많이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여성 심판들은 ㅆㄴ(Bit##)라는 욕설을 흔하게 듣기 일쑤이다. 오죽 헀으면 10여년간 이쪽 업계에 종사한 여성 심판조차, 욕설을 너무도 많이 들어 '내성이 생길 정도다'라는 투로 혀를 내둘렀을까.



   이러한 추태들은 수 십개의 국가에서, 수 십년간 자행되어왔다. 앞서 소개한 사태보다 더욱 심한 일도 많겠지만, 내가 성토하고 싶은 점은, '대체 우리 중 어느 누가' 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 화두를 던져, 진지하게 논의 할 생각이 있는지이다. 일반 사람들 입장에 심판은 '그저 심판'일 뿐이며, 슈펴스타들이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의 숨은 공신이자 숨기고 싶어하는 이면의 불편한 진실일 뿐이겠지.



   팔씨름 심판이란 직업은 꽤나 감사받지 못하는 직업인 것 같다. 미디어는 그들에 관해 얘기하기 보단, 화려한 선수들의 퍼포먼스에 이목을 집중하고 싶어한다. 사실 심판이 미디어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순간은, 그저 그들의 판정 미스로 대차게 까일 때 뿐이다.



   SNS도 마찬가지이다. 흔히들 말하는 키보드 워리어들은 경기의 댓글에 심판의 오심 혹은 정당한 판정을 비난하는 데 손가락을 놀리고 싶어할 뿐이다. 누구에게나 시간만 주어진다면, 경기 전체를 느긋하게 혹은 수 차례 훑어보고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심판은 1,2초라는 그 찰나의 순간에 상황을 진단하고 룰에 의거한 올바른 판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그 일에 관해선 프로페셔널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판정을 쉽사리 내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는 한다. 그 어떤 프로의 무대에서도 프로가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추가로, 심판들은 룰을 제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룰을 집행할 뿐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주최자에게 '정중하고 어른스럽게' 컴플레인을 넣을 사항이지, 당신이 심판에게 폭언과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팔씨름 대회는 대체적으로 10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고로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심판들은 편하지만은 않은 위치에 서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참가자들은 일정한 휴식 시간이 주어지며, 심지어 다른 체급 혹은 분야의 시합일 때는 엄청난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공정한 시합을 위해 일정한 집중력의 텐션을 유지해야 하는 심판들에겐, 선수들이 누리는 휴식은 엄청난 호사처럼 다가올 것이다.



   EUROARM과 WAF의 심판들은 본인들이 직접 사비를 털어(심지어 비행기 티켓도 본인들이 사비로 구매한다) 2인실 숙소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조식이 나오는 건 자랑, 먹을 시간조차 없다는건 안자랑).



   수 십년 간, 심판들은 이 스포츠 계에 바램 없는 아가페적인 사람을 베풀어 왔다. 그들은 그럼에도 응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몇몇 저급한 선수들의 추태를 묵과하고 참는 건 순전히 팔씨름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 기초한 사랑이다. 심판들은 그들 조차도 '팔씨름 가족'이라 생각하기에, 보상 없는 헌신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패밀리쉽이야말로 타 스포츠에서 보기 쉽지 않은 유니크함이라 본인은 칭하고 싶다. 우리 선수들도 이러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심판들에게 무한한 존중과 찬사를 보내주길 바란다. 이상!